"말씀 바로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재창조 받을때다!" [계 2:17, 10:9-10]
히브리 민족은 농사를 짓거나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신령한 음식 만나를 먹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나가 아닌 다른 것을 찾으므로 광야에서 쓰러져 죽게 되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살수도, 죽을수도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느날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후 "내 살은 신령한 양식이요, 내 피는 신령한 음료라.." 하였다.
이는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에 그 몸이 곧 말씀임을 말한것이다.
예수님은 또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하셨다.
예수님은 곧 말씀이므로 예수님 자체가 길과 진리, 생명인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떡을 기대 하였으나 예수님 자신이 떡이라 하니 그 진리를 알아 듣지 못한 그들은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러나 제자들은 "생명의 떡이 여기 계시니.."라며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신령한 양식을 분별치 못하여 육의 것만 찾다가 영생의 길을 놓쳤으나 사도들은 생명의 떡을 바로 받아서 은혜시대를 이끌어간 선구자가 되었다.
우리는 말씀을 바로 받아 우리속에 있는 모든 간사함과 인간성과 죄악성과 비진리를 몰아내고 재창조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히 4:12)
1. 예언의 말씀을 바로 받는 하나님의 사람
은혜시대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받는자가 복있는 사람이었고, 출애굽때는 하늘로 내려오는 만나를 먹는 자가 복이 있었으며, 에덴 동산에서는 선악과를 먹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었다.
이처럼 어느시대나 복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 받을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받되 예언의 말씀을 바로 받음으로 복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예언의 말씀이란 계 1:3 의 반드시 속히 될 일, 계 1:19 의 장차 될 일, 계 4:1 의 마땅히 될 일, 계 22:6 결코 속히 될 일로 오래 전에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해 놓고, 사도요한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봉함하신 말씀이므로 이를 이 시대에 감추었던 만나라 한다.
육이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지듯 영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야 영이 소생하며, 강건해지며, 향상한다.
굶주린 사람이 육의 힘을 쓸수 없듯 영의 양식을 바로 먹지 못한 자도 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과거 출애굽때 만나가 히브리 민족이 있는 광야에만 내려졌듯 마지막 감추었던 만나인 예언의 말씀 또한 영적 이스라엘 축복을 받을 사람이 있는 곳에만 내려진다.
보통 책은 읽는 책이지만 계 10:9-10 에 요한계시록은 먹는 책이라 한다.
이는 영의 양식을 삼으라는 말씀이다.
이 요한계시록 작은 책은 먹을때는 꿀 같이 달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쓰게 된다.
배에서 쓰게됨은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가 운동하면서 인간성, 죄악성, 간사함, 쓴뿌리 같이 깊이 뿌리내린 악한 근성을 뽑아내는 역사를 말함이다.
말씀을 아멘 하기는 쉬워도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이루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말씀을 바로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재창조 받으면서 이기지 못했던 것을 이길수 있다.
히브리 기자는 히 5:12-14 에 이제까지는 젖을 먹었으나 단단한 식물을 먹으라 한다.
젖이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말하며(히 6:1), 단단한 식물은 차원 높은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린아이의 신앙일 때에는 젖 같은 말씀을 먹어야 하지만 장성 하였을 때에는 단단한 식물을 먹고, 연단을 거치면서 지각을 받아 선과 악을 분변 바로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하겠다.
이것이 장성한 자의 신앙인 것이다.
우리는 장성한 분량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재창조 받자.
차원 높은 말씀, 단단한 식물을 가리켜 사 25:6-8 에 골수의 기름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라 하였다.
골수의 기름이란 뼈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으나 콜레스테롤이 없는 진액으로 봉함해 놓았으나 개봉된 말씀중의 말씀, 진리중의 진리인 요한계시록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란 오래 전에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변하지 않는 선지 예언서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은 자는 가리워진 면박과 덮힌 휘장이 제하여 지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리워졌던 죄악의 담이 허물어져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가 활발해진다.
또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 우리 속에는 사망과 생명이 공존하고 있었으나 골수의 기름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와 같은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는 자는 사망이 영원히 멸하여져 생명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사 25:6-8)
에뎀 동산에서 선악과 따먹고 들어온 사망 그 자체가 영원히 멸하여져 죽을 사람이 죽지 않는 사람으로 재창조 받아(고전 15:51-54)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신부의 축복을 받자.
요셉의 창고 말씀을 저장에 저장하듯 우리도 우리 속에 겔 3:1-3 같이 가득히 채워 마 24:45-46 같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종이 되자.
2.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사람 (사 66:2)
우리가 재창조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만일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사람이었다면 뱀의 미혹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야 하고, 바로 받았다면 그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자.
말씀 앞에 떨면 그 말씀 그대로 하는것을 말한다.
노아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하였다.
말씀앞에 떠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말씀앞에 떨므로 떠나라면 떠나고, 보내라면 보내고, 바치라면 바쳤다.
모세 또한 말씀 앞에 떨므로 애굽 바로 앞에 가라면 가고,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 내라면 이끌어 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어 우리 속에 들어오면 때로는 양심의 가책을 주며, 두려움도 주고, 평안과 담대함과 믿음도 주는 등 다양한 역사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 있다고 믿는 자들이여!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자.
3. 여호와의 말씀만을 쫓아 가는 하나님의 사람 (창 12:4)
아브라함은 나이 칠십오세에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갔다.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길은 축복의 길, 승리의 길이요, 사는 길이다.
말씀만을 쫓아간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말씀은 수천대에 이르러 변함없이 이루어 가고 있으니 우리도 말씀 앞에 떠는자로 그 말씀만을 쫓아가자.
제자들이 말씀 되시는 예수를 쫓아갔듯 우리도 이 시대에 주신 말씀을 쫓아가자.
환경, 사람이나 조건을 쫓아가지 말고 말씀만을 쫓아가자.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고, 편벽이 없으며, 공의롭고 정직하다.
그 말씀은 곧 길과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만을 붙들고 간다면 승리의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이다.
말씀 쫓아가는 사람마다 그 말씀으로 재창조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면 재창조 받고 있는 것이다.
말씀 쫓아가는 길에 장애나 장벽이나 난제가 있어도 끝까지 그 말씀을 쫓아 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결론 : 말씀 바로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