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제143차 [2009/4/10 (금) 철야 ]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축복. (계1:17-20)

▣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축복. (계1:17-20)

    우리가 죽어도 무의미한 일에 죽거나 쓸데없는 일에 죽으면 의미가 없다.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그 죽음이 가치가 있고 축복이 있다.
    살아도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지 예수님과 함께 살지 않는다면 그 삶의 가치 또한 없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분의 환난, 십자가, 고난에 동참해야 하겠다.


1)예수와 함께 죽는 축복. (계11:7-10)
    마지막에 하나님의 인맞은 종이 삼년 반 동안 다시예언하다가 정말 죽게 된다.

    (계6:9-11) 순교자가 기도해놓았다.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계11장에 와서 하나님의 인맞은 종 십사만 사천이 다시예언을 마치고 죽게 된다.
    삼일 반 동안 저희가 정말 죽어서 시체가 되는 것이다.
    이때는 죽어야 부활의 기운을 받아 살아나서 체질이 변화체를 이루고 들림받게 되니 죽어야할 자리에서 죽지 않으면 안 되고 살아야할 자리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계14:13) 주 안에서 산 순교하는 종이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셨다.
    주 안에서 죽은 자는 순교자요,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산 순교자이다.

    지금은 우리가 산 순교를 해야 할 때이다.
    (갈5:16-21)이 산 순교란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을 다른 쪽으로 말하면 인간성과 죄악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육체의 소욕 인간성 죄악성을 주 안에서 죽이는 것이 산 순교이다.

    (사4:3-4)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인간성, 죄악성 육체의 소욕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육체의 소욕이 죽어지면 저절로 성령의 소욕은 살아난다. 우리 속에 나쁜 것들이 죽어지면 좋은 것은 살아나고 반대로 나쁜 것들이 살아나면 좋은 것들은 죽어지게 된다.

    (갈5:22-23) 성령의 소욕은 9가지나 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게 하신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은 그보다 훨씬 많지만 열매가 없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9가지 육체의 소욕이 죽어지고 맺어진 아름다운 열매인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 고난을 겪으면서 육체의 소욕 인간성 죄악성을 죽이는 산 순교를 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일, 참기 어려운 일을 겪어도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혈기, 원망, 짜증, 속상한 것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는 힘들고 어렵게 고난가운데 살아서 투쟁을 하며 산 사람을 보면 성품이 거칠고 상대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주 안에서 겪지 않아서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난이 있어도 그것이 주 안에서 겪는 일이기 때문에 성품이 나빠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쁜 일을 겪으면서 더 은혜로워져야 하고 기도하는 사람, 너그러운 사람,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진리로 온전한 시련연단을 겪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시험을 겪은 것이다.
    자신이 혹시 시련과 연단을 거치면서 사람이 더 거칠어지고 융통성이 없어지고 영적으로 심령이 더 나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쁘고 감사하고 좋으면 더 좋아진 것이고, 혈기가 나고 심통이 나면 좋아지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더 좋아져야 한다.

    우리 속에서 육체의 소욕은 죽어지고 복음이 예수와 함께 살아나야 한다.
    전 세계가 마지막 복음의 예언의 성취를 이루려고 끓고 있다.
    이럴 때 우리들은 주 안에서 인간성, 죄악성을 죽이고 복음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야 하겠다.

    지금은 주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산 순교를 하고 마지막 때에 삼일 반 동안 죽게 되는 순교를 하니 산 순교와 육이 죽는 순교로 순교를 두 번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살아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예수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안 죽고 살까를 생각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죽고 잘 살까를 생각해야 정도로 갈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와 함께 죽는 축복이다.

    사도요한은 백 살이 넘도록 살아서 밧모섬이라고 하는 지독한 고난을 겪는 자리에 가서 산 순교를 겪고 난 뒤 죽는 순교에까지 이른 사람으로 우리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다.
    우리도 왜 산 순교를 겪고 죽는 순교에까지 이르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인 것이다.(계1:9)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기 위하여 주 안에서 죽는 순교를 거치는 것이다.

    아무리 죽기 싫어도 죽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살아날 수는 없다.
    살아나기를 원하면 죽는 것부터 해야 한다. 죽을 수 있어야 살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죽으려하니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축복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 예수와 함께 살수 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나 혼자 죽는 것은 두렵지만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이는 예수와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


2)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축복. (계11:11-12)
    삼일 반 동안 죽었던 종들이 삼일 반 후에 생기, 부활의 기운을 받아 살아나서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듣고 공중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주 안에서 겪는 산 순교로 인해서는 절대로 심령이 죽어지지 않는다. 심령이 죽었다면 시련이 아닌 시험을 겪은 것이다.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는 인간성 죄악성만 죽어지고 심령, 신앙, 감사, 찬양이 죽어지지 않고 반대로 살아난다.
    자신에게 오는 것이 시험인지, 시련과 연단인지를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사도요한이 주의 날에 밧모섬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 분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오른손을 얹고 기도해 주신 뒤 사도요한이 깨어났다.

    ◎(계1:19-20)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영적기능이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다.
    영적기능이 부활되어야 한다. 영적기능이 폐쇄된 사람, 영적기능이 무감각한 사람, 제 기능을 상실한 사람, 전혀 작용이 안됐던 사람들이 이 축복을 받으면 모든 영적 기능이 살아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영적기능이 살아나야 한다. 지금까지는 제 기능을 발휘해지 못했던 영적 기능들이 살아나서 활발하게 영적기능을 활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해서 우리 자신이 신령한 종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

    ·(계1:10) 듣는 기능이 살아난다.
    밧모섬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사도요한에게 제일 먼저 회복시켜주신 기능이 듣는 기능이었다.
    이 시대에 주신 예언의 말씀을 듣는 기능이 살아나야 한다.
    (사50:4-5) 듣는 기능이 살아나면 학자의 귀가 되고 귀가 열린다고 했다.
    (사11:3)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듣는 기능이 살아난 종의 축복이다.
    (사33:15)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다.

    ·(계1:10, 계4:2) 감동받는 기능이 살아난다.
    성령의 감동받는 기능이 살아나야 한다. 찬양을 해도, 기도를 해도 말씀을 들어도 감동을 못 받는다면 감동받는 기능이 망가졌거나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감동받는 기능이 사도요한같이 살아나서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예배드릴 때, 말씀을 묵상할 때, 설교들을 때, 설교할 때 감동을 받아야한다.

    눈물 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 눈물을 하나님께 구해야한다.
    가치없는 곳에 울어서는 안 된다. 복음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부족을 위해, 민족의 환난에 자신의 가족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 울어야한다.

    이번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계기로 우리의 모든 영적 기능이 살아나야 한다.
    마음, 심령이 살아나고 감동받는 기능이 살아나서 성령으로 감동받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감정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계1:12) 보는 기능이 살아난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보는 기능이 열렸다.
    금촛대만 본 것이 아니고 밧모섬에 오신 예수를 보았다.
    (계3:18)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는 기능이 살아나라고 했다.
    안약같은 예언의 말씀으로 보는 기능이 살아나게 하신다.
    (사11:3) 보는 기능이 살아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않는다.
    (사33:15)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자다.

    말하는 기능, 생각하는 판단하는 기능, 미래를 바로 보는 기능,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바라보는 기능이 살아났다.

    사도요한의 영적기능이 살아났던 것 같이 우리의 모든 영적 기능이 부활하고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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