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제110차 성회 [2006/7/3 월 (저녁)] 다림줄로 기준바로 잡은 종(슥4:10)

◈ 다림줄로 기준바로 잡은 종(슥4:10)


    유다총독 스룹바벨은 추가 달린 줄로 성전건축을 감독했는데,  추가 달린 줄을 다림줄이라고 한다.
    그것을 손에 잡고 기둥을 세우는 일에도, 벽체를 새울 때도, 무엇이든지 수직으로 세워지는 곳에는 스룹바벨이 다림줄로 기준을 잡았다. 그것이 그 당시에 공인된 기준이다.
    하나님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을 잡으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즉, 다림줄로 스룹바벨 성전을 똑바르고 튼튼하게 지어지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이 시대에도 다림줄 같은 기준이 되는 말씀, 하나님의 바른 공의로 이 시대에 기준을 바로 잡은 종이 나오면 하나님이 그 종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쫓아가고, 건물을 보고, 목사님을 보고, 교단을 보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림줄 같은 기준이 되는 말씀으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나라에는 법이 있다. 세계에도 공인 된 기준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흐트러진 기독교의 기준을 바로잡기 위해 주신 기준이 있는 것이다.



1) 말씀으로 기준 바로 잡은 종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준을 자기가 기도해서 받은 응답내린 것에 기준을 두려고 한다.
    응답을 제대로 받으면 다행이지만, 응답을 제대로 못 받았을 때는 모든 기준이 다 흐트러지게 된다.
    그래서 말씀으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 66권 전체가 말씀이다. 신, 구약 성경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된 일과 될 일이다.
    과거를 알려면 된 일을 알아야 한다.
    창조 때를 알고 싶다면, 창세기를 보면 있다. 창조에 대한 기준은 창세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나심을 알려면 마태복음 1장이며, 창세기에는 예수님의 기준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마태복음 28장, 예수님의 승천은 사도행전 1장, 성령이 강림하신 역사는 사도행전 2장이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될 일을 알아야 한다.
    계1:1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했다.
    즉, 다림줄이 말씀과 진리인데 과거를 알고 바로 살고자 한다면 된 일의 말씀을 잘 알아서 그것으로 기준을 바로 잡으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미래를 알아야 한다. 과거의 말씀은 다 알고 있고, 또 믿는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바로 알고 기준 바로 잡은 종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미래를 알고 가야 하겠다.

    그럼, 미래를 어디에다가 기준을 두고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꿈이나 기도하다의 환상도 아니다.
    미래를 예언한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이 있다.
    환난이 온다는 미래, 재림이 있다는 미래, 심판이 있다는 미래, 천년왕국이 온다는 미래, 무궁천국이 온다는 미래가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에 기록 되어있다. 이 말씀으로 기준 바로 잡은 종은 미래를 알고 가는 종이다.
    미래를 알고 가는 종은 눈이 열린 종이요, 미래를 모르고 가는 종은 소경이다.
    미래를 아는 종이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인도해야 한다.
    미래를 모르는 소경 같은 종이 미래를 모르는 소경 같은 성도를 인도하면, 주님 말씀하시기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고 했다.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보여준 미래에 대한 말씀으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열려져야 한다.

    우리는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말씀으로 기준을 바로 잡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자.
    응답받은 얘기, 환상 본 얘기, 꿈꾼 얘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으로 기준 바로 잡고 말씀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되자.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 이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다.
    그는 연륜도 많고, 살아 온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다.
    우리는 말씀을 잡고,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을 믿어야 하겠다.
    말씀은 의심이 없다. 그래서 환상계시, 몽조계시, 자연계시, 문자계시 있는 중에 말씀으로 이루어진 문자계시는 사단의 참소가 없다.
    그 이유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에 사단이 참소하지 못한다.(요1:1)
    말씀 앞에는 마귀참소가 꺽어지며, 말씀에는 모든 것이 복종한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마지막 때에는 계8:10-11에 강과 물샘에 떨어진 별이 그릇된 말씀을 가지고 쑥물로 먹인다고 했다.
    그것으로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우리는 말씀을 바로 받아 쑥물을 먹지 않고, 미혹 받거나,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신령한 영의 말씀으로 영이 살아나고, 신령해 지고, 강건해 져야 하겠다. 그래서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히브리 민족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주는 만나를 먹고 그들이 40년 동안 가나안땅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이
    계2:17에 감추었던 만나 같은 이 시대에 주시는 영의 양식이 미래에 될 일이다.
    이 말씀으로 기준 바로 잡은 종은 미래를 환하게 알고 갈 것이다.




2) 진리로 기준 바로 잡은 종. (사2:2-4)


    예수님은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진리이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진리이기에 예수님만 따라가면 된다.
    사람이 말씀을 듣고 진리로 깨닫지 못하면 오해가 생긴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진리로 깨달을 때는 이해가 되고 은혜를 받는다.
    한 예로, 예수님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
    유대인은 유형적인 헤롯성을 무너뜨려서 삼일 만에 건축한다는 말로 알아듣고 오해를 하기 시작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인데 예수님이 돌아가셔도 삼일 만에 살아서 부활하신다고 들었다.
    똑같은 말인데 유태인이나 율법사들은 진리로 듣지 못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해가 됐다.
    유대인은 성경을 많이 알아도 진리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제자들은 성경을 잘 몰라도 진리로 들었기에 깨달음이 있고 이해를 했다. 그래서 은혜를 받게 됐다.
    우리도 말씀을 진리로 듣고 깨달음이 있어야 이해를 하고, 오해를 하지 않게 된다.

    이 시대에 우리는 진리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 진리의 기준이란,
    *은혜시대 기준은 십자가이다.
    고전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의 도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말씀과 진리를 십자가의 도라고 한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도를 2000년 동안 따라왔다. 과거의 된 일을 알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온 것이다.
    이제는 될 일을 아는 사람은 환난시대에는 야곱의 도를 진리로 배워야 한다.

    *야곱의 도란,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않는 평화의 나라,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다가 1000년 동안 이루는 말씀과 진리를 야곱의 도라고 한다.
    이 야곱의 도가 이 시대에 진리의 기준이 된다.
    진리의 기준을 바로 잡으면, 진리의 혼선이 오지 않고, 미혹 받지 않는다.

    이 시대에 종들도 말씀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 말씀 속에 진리가 없다. 진리가 없기에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찬양이 건성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시작하는 진리요, 야곱의 도는 마쳐지는 진리이다.
    십자가로 시작한 기독교가, 야곱의 도로 마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야곱의 도를 받아 진리로 기준을 바로잡아서 미혹받지 않고, 진리의 혼선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

    요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전하기보다 재밌게 전하려고 한다.
    그래선 안 된다. 은혜를 받고, 깨달음이 있는 말씀이어야 한다. 웃은 것이 은혜가 아니다.
    은혜를 받으면 심령이 살아나게 된다. 진리는 생명이기에 진리가 심령에 들어와 심령이 살아나고 소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쁨이 살아나고, 생명력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밌게 웃은 것은 그때뿐인 것이다.
    말씀을 진리로 받아 내 속에 생명이 되고, 기준이 되어서 이 패역한 시대에 비진리를 이기고, 미혹을 이겨야 하겠다.



3) 시대기준 바로잡은 종. (마24:45-46)


    때를 따라 : 시대를 바로 보는 안목이 열려야 한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시대를 보는 기준을 알아야 하겠다.
    시대는 천지창조가 있는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쭉 흘러내려온다.
    지금은 창세기시 같은 시대도, 열왕기 같은 시대도, 초대교회 같은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 같은 시대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 같은 시대도, 사복음서 같은 시대도, 요한계시록 같은 시대도 아니라고 하며, 어느 시대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시대 기준이 바로 잡히지 않은 것이다.

    > 시대는..
    양심시대(아담, 하와, 셋, 아벨, 가인)
    언약시대(노아, 아브라함)
    율법시대(모세)
    은혜시대(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를 대신 져주심.) : 법을 어겨도 죽이지 않음.
    환난시대(계8:7. 공산주의가 지구 땅 1/3을 공산화 시키고부터 시작 됨.): 공산주의가 생기고부터
    천년안식 시대(세상을 심판 후부터 1000년 동안 예수님이 통치하는 시대)
    무궁안식 시대(천년안식 시대 후 영원토록) : 지구는 사라지고(벧후 3장),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간다.

    = 이것이 미래이고, 될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무궁안식 시대까지 가자.
    우리는 말씀으로 진리 기준을 바로 잡아 미래를 알고 시대를 보는 안목이 열리자.

    지금 율법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거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가 되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율법시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면서는 은혜시대가 됐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나타나고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이 공개 된 이 시대는 환난시대이다.
    은혜시대 종들은 지금이 은혜시대라고 주장한다. 과거 유대인들이 율법시대라고 주장할 때에도 결국에는 은혜시대가 되었듯 지금도 은혜시대라고 주장해도 결국에는 환난시대가 된다.

    율법시대 사람들도 은혜시대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말씀을 들을 때에는 율법시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를 받아 돌아왔다. 그러나 은혜시대 말씀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환난시대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까지 예수 믿던 것과 차원이 있는지 들어보면 알게 된다.
    시대의 기준이 바로선 사람은 신앙의 기준도 바로 서게 된다.

    우리는 시대의 기준을 바로잡자!
    은혜시대에서 환난시대로 넘어왔다. 이제는 환난시대의 기준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될 일의 말씀으로 교회를, 종들을 살려야 하겠다.



4) 생활 기준 바로잡은 종. (마6:10)


    말씀기준, 진리기준, 시대기준이 바로 잡히면, 생활의 기준이 바로 잡힌다.
    삶의 가치관을 바로 가지게 된다.
    인생관, 신앙관, 생활관, 물질관, 이성관, 미래관이 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생활을 하게 된다.
    생활의 기준이 말씀이 생활화 되고, 진리가 생활화 되어, 시대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마6:10. 하늘에 이룬 뜻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알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사43:7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생활.
    사49:3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생활.
    즉, 하나님 중심체 생활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각을 할 때, 마음을 먹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했다면, 이것이 하나님 중심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복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말씀각각, 생활각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우리의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
    주일 지켜라, 주일에 사사로운 말을 하지마라, 욕하지 마라, 십일조 내라는 말씀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
    우리 생활의 기준이 바뀌어야 하겠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영광 중심의 생활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의 기준을 바로 잡은 종에게 하나님의 뜻을 그 종을 통하여 이루시기 위해 그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종이 원하는 것 또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 축복을 우리가 받자!



5) 물질의 기준 바로 잡은 종.(계2:14)


    발람과 발락이 나온다.
    발람이 선지자고, 발락은 이방나라 왕이다.
    발락이 발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돈을 많이 줄 테니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라’고 한다.
    발락이 물질로 발람을 꾄다.
    발람은 물질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게 된다. 발람이 기도했을 때 여호와가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발람이 자꾸 가도 되냐고 묻기에 여호와께서 가라고 하시고 발람을 죽이시려고 했다.

    *발락의 교훈 : 물질로 사람을 오라, 가라하며 사람을 이용 한다면 그것은 발락이 된다. - 물질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발람의 교훈 : 물질 때문에 주의 일을 태만히 하고, 물질이나 사람에 끌려 다니면 발람이 된다.

    말세 환난시대 촛대 교회가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은 물질 때문에 더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물질에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내가 굶을지언정, 못살지언정 비굴하게 물질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또한, 헛되이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노예가 되어질 수 있다.
    물질에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도 돈을 받고 부당한 청탁을 받기 때문에 뇌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물질로 도움을 받았어도, 그 것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으면 발람의 교훈이 되지 않는다.
    또한 종들은 물질을 무단히 받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물질에 아부하지 말아야 한다. 물질에 아부할 때 가장 비굴한 사람이 된다.
    물질의 기준을 바로 잡은 종은 십일조를 내는 것은 기본이다.
    우리는 물질에 비굴하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되고, 또한 물질을 받았어도 부당한 요구를 수용해서도 절대! 안된다.
    물질에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바르지 않은 것은 바르지 않은 것이다.
    즉, 물질의 도움을 받았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혜롭게 해야 한다. 내가 바르게 하되 남에게 상처를 주지를 말고, 헛된 소문이 나게도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물질의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물질이 자꾸 들어 올 때 발락의 교훈을 조심해야 하고, 물질이 없을 때는 발람의 교훈을 조심해야 한다.
    발람과 발락의 교훈을 이긴 종에게 하나님께서 큰물질의 축복을 주신다.




결론 : 기준 바로 잡은 종,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말씀기준, 진리기준, 시대기준, 생활기준, 물질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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