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환난에 동참한 사도요한이 받은 축복 (계1:9)
또한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므로 사도요한이 받았던 축복을 받게 된다. 1) 1차 환난에 동참한 사도요한이 받은 축복 (요19:25-27)
사도요한이 가장 먼저 받은 축복이 바로 예수님의 유언을 받은 축복이다. 성경에는 가장 복된 여자를 마리아라고 하였으니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는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사랑만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제자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이 올 때 인정을 받는 것이나 사랑을 받는 것은 생각지 않고 오직 그 고난만을 생각하니 더 힘들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고난주간을 통하여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그 고난을 피해가려고 했었던 것이고 사도요한은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기에 1차 환난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더라 (요20:1-8) 도마 같은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사도요한은 단번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축복 (요21:7) 예수님이 날이 새어갈 무렵에 디베랴 바닷가에 서 계셨는데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제일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시라!"하고 외쳤다. 예수님은 진리요 말씀이다. 우리가 진리를 발견했으면, 말씀을 발견했으면 사도요한이 "주시라"하고 외쳤던 것같이 말씀과 진리가 있는 것을 외쳐야 한다. *주가 오실 때까지 머물러 두실 축복 (요21:20-22) 조반을 고기와 함께 다 잡수신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이것을 사도요한에게는 묻지 않으셨으니 이는 사도요한이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요21:18-19)예수님이 베드로가 십자가를 지고 순교할 것을 직접 말씀하셨다. 이런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시고 또한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고 순교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순교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듣고 나서 바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으니 사도요한이 베드로와는 다른 사명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사도요한은 죽지 아니하겠다고 하신 말씀으로 알아들었지만 여기서 하신 말씀은 (계1:9-17)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위하여 밧모섬에 있는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밧모섬에서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약 주후 95년경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33세로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연대에서 빼면 약 62년 후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것을 요한복음 21장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비밀로 미래에 되어질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에 요한계시록이 없다면 미래로 가고 있더라도 미래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도요한이 1차 환난에 동참하므로 받은 축복들이다. 2) 2차 환난에 동참한 사도요한이 받은 축복 (계1:9)
밧모섬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곳으로 사면이 다 바다로 둘려있고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곳이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니 이것이 사도요한에게는 2차 환난이다. 약5:7절 이하에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였다. 주의 날, 부활절에 예수님이 밧모섬에 오셨다. 요한복음 21장에 하신 약속을 62년이 지난 후에 이루시기 위해 밧모섬에 오셨다. 사도요한이 있었던 밧모섬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엄청난 비밀과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환경이 밧모섬과 같이 되는데 그 환경은 매우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예수님이 오시면 매우 열악한 환경이 굉장한 축복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땅의 길이 막히면 하늘의 길이 열린다. 하늘의 길이 열릴 때 땅의 길 또한 열린다. 우리는 땅의 길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막혀도 자꾸 자신의 힘으로 열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때 하늘의 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계1:10, 계4:2) 눈에 보이는 것은 범죄자고 귀에 들리는 것은 모두 안 좋은 말들인 열악한 환경에서 주님을 만나서 1차, 2차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귀가 열렸다 (계1:10)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주의 음성을 들었으니 귀가 열린 축복을 받은 것이다. 계4:1절에서 또다시 주의 음성을 들었다. *눈이 열렸다 (계1:12-13) 귀가 열려 주님의 음성만 들었던 것이 아니고 눈이 열려 밧모섬에 오신 주님을 볼 수 있었다. 사도요한은 금촛대를 보았고 인자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금촛대는 계1:20절에 주의 오른손에 붙들린 말세의 신령한 교회요, 우리의 심령에 이루어진 심령의 성전인 것이다. 인자되시는 예수님은 계4:2-3삼위일체 하나님을 벽옥의 여호와, 녹보석 주예수, 홍보석 성령님으로 보았다. 땅의 길이 막혀있을 때에 기도가 하늘의 길을 열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의 역사와 축복을 주실 때는 반드시 고난이 먼저 오게 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먼저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역사와 축복을 받게 되는데 고난이 있을 때에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다시 그 고난이 돌아오게 된다. 그러기에 고난이 있을 때에 사도요한같이 모든 고난을 한번에 끝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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