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제123차 [2007/8/1 수 (철야) ]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종 (미4:1-2)

▣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종 (미4:1-2)

    지난밤에는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여호와가 주셔서 우리가 받은 것이다.



1)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종 (사66:2)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다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말에 떠는 사람은 많지만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사야는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종을 권고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들어가게 하신다고 하였다.

    우리가 말씀 받은 것으로 만족해하거나 흡족해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떠는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 앞에 떤다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복종하고 그 말씀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떨면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말씀으로 권고하고 권면하고 인도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까지 들어가도록 만드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받고도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떨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 받았다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떨게 되는데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떤다면 이는 여호와를 존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경외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거 다윗이나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가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때 떨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와서 집안에 유언하고 죽고 살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였을 때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인간 이사야의 말이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말이요, 이사야가 전한 말은 곧 여호와가 주신 말씀이기에 그 말씀에 떨었다.

    이사야가 전하여 준 여호와의 말씀에 히스기야 왕이 떨므로 성전으로 가서 눈물로 기도하였다.
    그러자 이사야가 다시 와서 여호와께서 왕의 눈물을 보았고 왕의 생명의 수한을 십오 년 연장하여 주셨다고 전하였다.

    우리 시대도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주의 종의 말로만 들어서는 안되고 그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받아야 떨게 된다.
    만약 그가 이사야선지의 말을 그냥 사람의 말로 듣고 무시했더라면 히스기야 왕은 죽고 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하는 것은 이사야가 전하지만 그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히스기야 왕이 떨면서 눈물의 기도를 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은 생명을 연장받기도 하고 병을 고침받기도 하는 것이다.

    주의 종이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그것을 그냥 인간의 말로 듣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말일에 영적 자세가 히스기야 왕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윗왕은 남의 아내를 빼앗으므로 나단선지의 책망을 받았는데 다윗왕은 히스기야 왕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향력을 가졌으며 또 왕 중에서도 입지가 큰 대왕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나단이 목숨을 걸고 다윗을 책망하였을 때 다윗이 나단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대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요가 젖을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한 다윗에게 여호와는 용서를 주셨다.

    과거 이러한 왕들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겸비함을 보인 것이다.

    자신이 성도인가 주의 종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이 되면 될 수록 다윗 왕이나 히스가야 왕같이 더욱 겸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떨었던 사람은 수도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모두 복종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종 (창12:4)

    여호와의 말씀을 받고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떤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은 칠십오 세에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였는데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했더라면 말씀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떠나라면 떠났고 보내라면 보냈고 받치라면 받쳤으니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사람은 무슨 말씀이라도 순종한다.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길이 사는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최고의 영광된 길이다.

    말씀 쫓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고, 말씀 쫓아가는 사람은 미혹받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다.



3)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시대에 기준을 삼는 종 (슥4:10)

    자기 생각, 자기 응답 등 자기의 것으로 기준을 삼아서는 안된다.
    마지막 때 가장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인데 자신의 감정에 속아서는 안되고, 자신의 성품에 속아서는 안되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

    말일에는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 다른 말씀으로 기준을 삼을 수가 없다.

    출애굽한 히브리민족이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을 때는 가나안 땅으로 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고라가 당을 지어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낼 때 하나님은 기준이 틀어진 고라의 당을 땅 속에 생매장 하였다.

    또한 정탐꾼을 보내고 정탐꾼이 돌아왔을 때 열명이 말씀을 믿지 않고 기준이 틀어져서 새로운 지도자를 새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는 그들이 기준이 틀어져서 지도자 모세를 부정했고, 여호와의 말씀을 부정한 것이다.
    그날로부터 광야를 사십년 동안 돌면서 가나안 땅이 유업으로 받을 땅이라는 말씀을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겨두고 출애굽 일 세대는 모두 죽게 되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말세의 역사는 출애굽 역사를 다시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였다.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여호와가 기뻐하셨다고 하였다.
    우리가 오늘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으면 여호와가 우리를 기뻐하신다.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자신과 자녀를 교육하는 것 까지도 그 기준이 여호와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야지 자신의 응답으로 기준을 삼으면 안된다. 응답이나 기도는 참고로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기준을 바로 잡고 그 기준을 지켜내야 하는데 이 기준을 바로 지켜내면 내게는 축복이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기준이 똑바로 서있으면 미혹받지도 않고 낙심하지도 않는다.
    낙심한다는 것은 벌써 인간의 생각이 들어갔다는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을 때 인간의 생각은 바벨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 여호와의 말씀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보아야지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를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
    또한 언어까지도 내 생각을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을 말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바벨이다.



4) 여호와의 말씀으로 검과 힘을 삼는 종 (히4:12)

    자신이 가진 것, 아는 것으로 힘을 삼으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검을 삼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힘을 삼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다고 하였고 살아서 운동하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자신의 힘을 말씀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면 어떤 대적이라도 이길 수 있고 어떤 난제라도 이길 수 있다.



5) 여호와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 살린다 (단12:3)

    사람을 살리는 것은 다른 것으로 살릴 수 없고 이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살린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자신이 살았다면 여호와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자신하나 살리는 것도 힘겨워하고 가족도 제대로 못 살리는 입장에 있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운동하고 역사해 줄 때 사람을 살리게 된다.

    겔37장에 보니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떼가 굴러다니고 있을 때 여호와가 이 해골 떼가 살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에스겔의 입을 통하여 대언하여 말하니 뼈가 뼈끼리 짝을 맞추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를 받으며 큰 군대로 살아났다.
    해골 때라도 살아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의 힘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받으려면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 곳으로 가야 한다.



결론 : (사55:10-11)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목록으로
오늘 0 / 전체 2766
no. 제목 조회수 작성일
공지

11월 전국 요한계시록 세미나 일정 

341442024년 8월 27일
공지

제 324차 선지서 및 요한계시록 대성회

469402024년 8월 9일
1251

제123차 [2007/8/9 목 (철야) ] 작은 책을 먹고 새 역사를 받은 종 (계10:1-3)

8442014년 5월 9일
1250

제123차 [2007/8/8 수 (철야) ] 기름 부어주사 삼대직분의 축복을 주신다 (요일2:20, 27)

11512014년 5월 9일
1249

제123차 [2007/8/7 화 (철야) ] 사명자의 체질변화 (고전15:52-54)

10182014년 5월 9일
1248

  제123차 [2007/8/6 월 (저녁) ] 사명자의 변화받은 새 신앙 (사13:2-4)

7582014년 5월 9일
1247

제123차 [2007/8/5 주일 (철야) ] 주의 재림 가까우니 물러서지 마라 (히10:37-39)

8892014년 5월 9일
1246

 제123차 [2007/8/4 토 (철야) ] 택한 자에게 주시는 소성함의 축복 (사57:14-16)

8572014년 5월 9일
1245

  제123차 [2007/8/3 금 (철야) ]  심령의 변화를 주신다 (사24:1-4)

13132014년 5월 9일
1244

 제123차 [2007/8/2 목 (철야) ]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역사 (사59:19-20)

9682014년 5월 9일
1243

 제123차 [2007/8/1 수 (철야) ]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종 (미4:1-2)

9512014년 5월 9일
1242

 제123차 [2007/7/31 화 (철야) ] 시대에 맞게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가자 (사13:2-3)

8652014년 5월 9일
1241

 제123차 [2007/7/30 월 (철야) ]  시대에 맞게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가자 (사13:2-3)

8092014년 5월 9일
1240

제123차 [2007/8/10 금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가도록 삼대 기적을 주신다 (사19:19-20)

9832014년 5월 9일
1239

제123차 [2007/8/9 목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종 새 역사를 주신다 (계10:1-3)

8872014년 5월 9일
1238

제123차 [2007/8/8 수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종 기름부어 주신다 (시23:5)

11882014년 5월 9일
1237

  제123차 [2007/8/7 화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종 체질의 변화를 주신다 (고전15:52-54)

8722014년 5월 9일
1236

  제123차 [2007/8/6 월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종의 신앙을 변화시켜 주신다 (사33:6)

8582014년 5월 9일
1235

제123차 [2007/8/5 주일 (저녁)]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종 물러서지 마라. (히10:37-39)

8032014년 5월 9일
1234

제123차 [2007/8/5 주일 (오전)] 여호와의 성산 축복(슥8:3)

10802014년 5월 9일
1233

제123차 [2007/8/4 토 (저녁) ] 복음의 기호를 들고 갈 사람에게 소성함과 소생함을 주신다 (사57:15-16, 시23:1-3)

11342014년 5월 9일
1232

제123차 [2007/8/3 금 (저녁) ] 심령의 사대난제를 해결해 주신다 (사24:1-3)

10602014년 5월 9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예루살렘교회   경기도 여주시 매룡2길 9-66  문의 : 010-4743-1440   담임목사:문제선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