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차 [2011/12/28 수(저녁) 복음의 기호를 들기에 합당한 종. (사11:11-12)]
C 2014년 5월 15일 오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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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기호를 들기에 합당한 종. (사11:11-12)
사람에 매이지 말고 환경과 생활에 매이지 말고 복음을 쫓아가는 길을 가야 형통하고 평탄한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과 복음을 쫓아가는 길이 생명의 길이요, 가장 안전한 길이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길이니 사람의 생각과 정반대 역사가 있다.
어떤 일에나 그 일에 합당한 종이 있는데 합당한 종에 그 일을 맡겨야 그 일에 효율도 생기고 결과도 아름답다. 마지막 복음의 기호를 들어서 일어나 빛을 발할 사람 또한 그 복음의 기호를 들기에 합당한 사람이 있다.
1)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아 사리사욕을 버린 종. (겔36:26)
새 영이 들어와서 우리 속에 안 좋은 귀신의 영, 개구리의 영, 더러운 영, 혼탁한 영들을 모두 몰아내주면 영이 맑아지면서 머리도 맑아진다. 이러한 안 좋은 영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려고 하는 길에 장애를 만들면서 인간의 생각을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만드는 것이다.
새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인데 빌2:5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품으라고 하였다. 새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굳은 마음이 제하여지고 강퍅한 마음이 떠나가며 정직한 마음, 공의로운 마음, 성실한 마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생기고 교만한 마음, 거만한 마음, 사리사욕이 모두 떠나가게 된다.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자신의 직업이고 생명이고 자신의 전부인 배와 그물을 버리고 베드로는 주님을 쫓았다. 주님이 버리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 같지만 그것을 버릴 때 더 좋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에 농기구를 불태우고 소를 잡아 온 동네 사람과 나누어 먹으며 엘리야를 따랐고 결국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로 받아 그 시대에 최고의 선지자가 되었다.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버리듯 엘리사가 농기구를 불태우듯 우리가 대단한 결심 속에 사리사욕을 모두 버리고 복음의 기호를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새 영과 새 마음을 넣어주시면 사리사욕을 버릴 수 있으며 사리사욕을 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사명, 더 큰 역사, 더 큰 은혜, 더 좋은 것들을 주시는 것이다.
다니엘이 당장 눈에 보이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물과 채식만을 할 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열배로 주셨고 다른 사람보다 더 윤택한 축복을 주셨다.
2)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받아 육체의 소욕을 죽인 종. (사4:4)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죽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부어주셔야 한다고 했다. 갈5:16-17절에서는 성도의 마음속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있어서 서로 거스려서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이기면 육체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소욕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면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은 정욕으로 자기중심, 가족중심, 혈연중심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데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성과 죄악성이다. 인간성은 자존심, 혈기, 원망, 짜증, 고집, 질투, 투기, 아집, 교만 등과 같은 것이며 죄악성은 사치, 음란, 향락, 오락, 도박, 술 취함, 방탕함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두 가지를 묶어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하며 육체의 소욕은 반드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만이 죽어지며 복음의 기호를 들기에 합당한 종을 만드시는 역사다.
육체의 소욕이 없는 사람은 없은데 육체의 소욕은 복음의 기호를 드는데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육체의 소욕을 버려야 한다. 육체의 소욕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강하다는 것이며 육체의 소욕에서 불순종이 나오고 성령의 소욕에서 순종함이 나오는 것이다.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이 범죄할 때에 엘리 제사장이 이를 책망했지만 자녀들이 그 말을 듣지 않았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가정을 멸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불순종하는 마음을 넣으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사리사욕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나가 불순종하다가 그 대가를 치르고서야 복음의 길을 나섰으니 우리에게 자아가 강하면 순종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매서운 징계를 받게 되므로 징계를 받기 전에 자아를 버리고 순종해야 한다.
3) 이사야같이 입이 성결된 종. (사6:1-8)
복음의 기호를 들기에 합당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이사야같이 입이 성결되어야 한다. 사6:1-8절은 하나님이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실 때의 모습인데 가장 먼저 단에서 취한 핀 숯을 입에 대어 악이 제하여지고 죄가 사하여지게 하셨다.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말씀이 되기를 원한다면 말을 적게 해야 한다. 말씀만을 말하고 진리만을 말하는 사람은 똑같은 말씀을 전해도 감화력이 있고 호소력이 있고 사람을 끄는 힘과 주관하는 힘이 나오는 것이다.
복음의 기호를 세울 종으로 합당한 종을 만드시기 위하여 지난날에 잘못 썼던 입을 성령의 숯불로 대어 입이 성결되게 하신다. 입에서 음담패설이나 남을 흉하는 말이나 탓하는 말을 하지 말고 남을 살리는 말, 생명을 전하여 주는 말을 해야 하고 찬양하는 입, 기도하는 입, 말씀전하는 입이 되어야 한다. 이런 종이 불을 구하면 불을 내려주시고 치료하는 역사를 구하면 치료의 역사를 내려주시는 것이다.
4) 눈이 열려 시대를 보는 안목이 열린 종. (계3:18)
사도요한은 눈에 있는 안목의 정욕을 제하라고 하였고 사11:3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마라고 하였다. 다윗은 창문을 열고 보게 된 여성에 안목의 정욕이 발동하여 강제로 자신의 여자로 취하였고 결국 그 죗값을 받게 되었다.
계3:18절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였다. 발람선지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져 당나귀도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선지자인 발람은 보지 못했다.
환난의 바람과 복음의 바람이 불어오는 이 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바람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바람을 타기 위해서는 눈이 열려져서 복음의 기호를 들어야 한다.
남의 허물을 보는 눈은 범죄하는 눈이요 말씀이 보이는 눈,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가 보이는 눈, 시대가 보이는 눈, 미래가 보이는 눈으로 열려져야 한다.
사도바울이 눈에 비늘을 쓰고 있으니 예수믿는 사람들이 모두 이단자로 보였지만 주의 은혜가운데 눈에 비늘이 벗어지니 율법시대가 아닌 은혜시대인 것이 보였고 예수그리스도가 보였고 그 시대에 최고로 신령한 종이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 안목의 정욕이라는 비늘이 씌여있지 않는지, 그러면서도 자신이 신령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고 눈에 담겨져 있는 음란, 악기, 독기, 살기들이 모두 뽑아져야 한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말씀이 이루어져서 안목의 정욕이 제하여지고 신령한 눈이 열려서 말씀을 보되 된 일의 말씀이 아닌 될 일의 말씀이 보여져야 한다. 그러면 마24:45-46절같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이 된다.
5) 선지자들의 영을 받아 선지자적인 사명을 주신 종. (계22:6)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선지자들에게 부어주셨던 영이 선지자들의 영인데 이는 선지자들의 영혼이 아니라 선지자들에게 예언하도록 하나님이 부어주신 선지자들의 영이다.
선지자의 영이 오면 머리에는 신이 오고 입에는 말씀이 오고 마음에는 선지자의 마음이 생기고 생각에는 선지자의 생각을 주셔서 선지자로 말하게 하고 선지자로 생활하게 하고 선지자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이다. 선지자들의 영이 오면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환하게 알게 되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쓰실 종으로 세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