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축복. (계1:9)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깨닫고 기록하고, 예수님을 만나며 최고의 영계축복을 받았는데, 그 이면에는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1. 예수의 환난에 동참한 사도요한.
다른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들을 보면, 고난을 즐거워하라. 고난이 더 좋은 축복을 가져다준다. 등의 좋은 말씀들이 있지만, 사도요한처럼 자신은 예수의 환난에 동참한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없다.
-요19:23-27에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아야 했고, 가시 면류관과 못으로 인하여 피가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예수님이 목이 마르시다고 해도 물을 떠다드릴 수 없고, 로마 군병이 신포도주를 입에 갖다 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을 소문으로만 들었으니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고난에 동참하였다.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면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용기가 아닌 사랑의 힘이다. 우리도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 진리, 말씀,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주변의 어려운 일로 인하여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에게는 너도 예수의 당이냐며 시험이 있었지만 도리어 십자가 밑에 까지 따라가며 예수님의 유언을 받던 사도요한에게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도 복음과 가깝게 생활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면 시험이 없지만, 늘 복음의 곁에서 돌면 시험과 마귀참소가 오게 된다.
-사도요한은 십자가 복음으로 밧모섬에 유배되므로 또 다른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였다.
요21:20-22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사도요한은 베드로와 다른 길을 갈 것을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사도요한을 밧모섬에 있도록 하고 요21장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후 95년경 주의 날에 사도요한을 찾아오셨다.
우리에게 복음을 향하여 갈 때 닥쳐오는 어려운 일들을 사도요한의 심정을 가지고 하루하루 참아 갈 때에 그것이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 때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고 예수님과의 만남의 축복도 받게 된다.
2. 예수님의 나라에 참예하는 축복. (계11:15)
환난에 동참하였기에 좋은 일의 축복도 함께 받게 된다.
예수님이 가실 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오실 때에는 이 세상을 심판하여 옛날 에덴동산 같이 회복하시고 예수님이 천년동안 통치하신다.
예수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한 사람이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나라에도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을 인하여 고난이 오는 것에는 상급과 축복이 있지만 자신의 욕심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은 보응이요, 상급도, 축복도 없다.
마6:10, 마6:31-33, 마21:43, 마25:32-34, 요3:3-5, 고전15:50, 갈5:22 등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였으니 이 말씀들이 계11:15에서 일곱 번째 나팔 불고, 이 지구 땅에 천년왕국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결론 : 공의대로 갚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