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재림을 열심히 알려야 할 때다 (계22:6~7)
은혜시대 때도 초림의 주님이 오시는 것을 열심히 알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세례요한이다.
초림의 주님이 동정녀 몸에서 나신다, 베들레헴에 나신다는 예언을 이사야7:14, 미5:2에서 했고, 사도 요한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전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재림의 주를 알려야 하는 종이 있는 것이다.
지난 2천 년 동안 믿음의 선진 들은 주님을 믿고 있다가 홀연히 다 올라간다고 전했고 대부분 교회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어느 날 갑자기 오시는 분도 아니요, 믿는 자들이 홀연히 다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주의 재림을 알릴 사람을 하나님의 인 맞은 종 14만 4천으로 말씀하고 있다.
주의 재림이 가까워 오면 마25:1~13에서 교회와 종들에게 어떤 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지 말씀하고 있다. 많은 교회와 종들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노아의 때와 같이 마24:37~34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5:8~12같이 부동산 투기 즉, 집이 있어도 또 집을 사고 땅이 있어도 또 땅을 사서 그것으로 인해 얻어진 불로소득으로 잘 먹고 즐기며 자기의 영화를 누리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재산을 늘리고 부동산을 하나라도 더 살까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사는 우리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영적으로 안일과 태만, 게으름, 현실주의에 빠져서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교회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마25:1~13에서 한마디로 ‘다 졸며 잘쎄’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잠을 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으니 마25:5~6에 다 졸며 자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그 사람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외침과 동시에 열 처녀가 자고 있다가 다 깨어 신랑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25:1~13의 내용은 예수님이 직접 마지막 때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1) 선지자들의 영을 부어주신다 (계22:6)
선지자들의 영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선지자 4명 소선지자 12명, 합하여 16명의 선지자가 많은 예언을 할 수 있도록 부어주신 영을 선지자들의 영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이사야의 영, 예레미야의 영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모스라는 선지자는 목자이면서 뽕나무를 기르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임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었으니 말씀이 임해서 예언을 한 것이다.
선지자들의 영이 오면 그 사람이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계7:1~4 하나님의 인 맞은 종 14만 4천을 통해서 삼 년 반, 1260일 동안 주님이 오시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였는데, 살전5:1~5에 빛의 사자에게는 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이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열심히 알릴 사명이 있는 종들에게는 선지자들의 영이 와서 그 사람의 생각, 마음, 입을 주장해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이끌림 속에 주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을, 마25:5~6에 깨어 있어 외치는 자 같이 알리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영이 오게 되면 감동 속에 옛날 선지자들같이 진실하게 주의 재림을 외칠 때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된다.
하나님은 겔2:3~5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 자손 곧 폐역한 백성에 보내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리도록 외치게 하셨다.
우리 시대 사람도 자기 생각에 관심이 있는 말을 하면 바로 반응을 보이지만, 자기와 별 관심이 없는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주의 재림을 알릴 사명이 있어 교회를 세우셨기에, 주의 재림에 관심이 있고 사명이 있는 지명 받은 사람은 선지자들의 영을 부어주셔서 자신이 먼저 주의 재림의 임박함을 깨닫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전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사명이 있는 종들에게 선지자들의 영을 부어서 생각의 변화, 마음의 변화,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2) 주의 일이 소문 나고 부흥케 하신다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본문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 같이 주의 일이 소문 나고 부흥되도록 우리는 주의 재림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초림의 주가 오시는 것을 열심히 외친 세례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요단강에서 회개를 외쳤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행할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칠 때, 그 외침 속에 많은 사람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침례를 주었으니, 할례밖에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침례란 기독교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 일로 세례요한을 압박하거나 비방하거나 이단이라고 한 사람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세례요한에게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곧 초림의 주가 오실 때가 되어 초림의 주를 알리는 종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실어주신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가 가까워져 오면 또 한 번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회개시키며 침례를 준 것 같이, 우리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주의 일이 소문 나지 않으므로, 주의 재림을 열심히 외쳐야 한다.
3) 많은 사람을 회개시켜 살리게 하신다 (단12:3)
본문에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다고 하셨으니, 주의 재림을 열심히 전해야 하는 가장 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성경 지나간 역사를 보아도 사람을 살리고자 할 때 자신이 먼저 살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쳐야 할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였다.
도망하는 요나가 타고 있는 배가 풍랑을 맡게 하시고, 요나가 회개 회개하지 않을 때 제비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자 스올이라는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된다. 스올이라는 뜻은 음부라는 뜻인데 요나가 3일 동안 스올의 뱃속에서 음부를 경험한 것이다.
요나는 3일 만에 바닷가에 토해지고 하나님의 예정대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으로 가서 하루만 외쳤는데도 왕이 조서를 내리고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라고 명령하였다.
앗수르의 왕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그 마음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의 한번 외침 속에 3천 명, 또 한 번 외칠 때 5천 명이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다.
우리 시대도 계10:11 많은 백성과 나라와 임금에게 다시예언 할 때는 임금까지라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4) 큰 물질을 주셔서 복음의 큰일을 하게 하신다 (사23:18. 사45:3, 사60:5~9)
주의 재림을 알리는 교회, 가정, 기업, 종에게 큰 물질을 주셔서 복음을 위해 큰일을 하게 하신다.
△사23:18에서는 주의 재림을 알리는 기업에 물질을 주신다 △사45:3에서는 주의 재림을 알리는 종에게 큰 물질을 주신다 △사60:5~9은 주의 재림을 알리는 교회에 큰 물질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750년 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큰 물질 주신다는 예언은 2750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제 주의 재림을 알리는 교회, 종, 가정, 사업장에 주실 줄 믿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사실이 있으므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말씀도 사실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5)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하신다 (사35:10)
주의 재림을 열심히 알려야 자신에게 있는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될 줄 믿는다.
우리에게 가장 슬픔과 탄식이 나오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으로 느끼는 슬픔과 탄식은 죽음일 것이다.
사람들이 제일 두려운 것이 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망으로 인한 슬픔과 탄식, 사람과 물질·질병으로 인한 슬픔과 탄식, 그 어떤 슬픔과 탄식일지라도 말씀대로 주의 재림을 열심히 알리는 사람의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하시고, 그 심령에 기쁨과 즐거움을 사뿐히 넣어 주신다
이 세상은 죄악 되고 늘 사망과 고통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으로는 절대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로만 슬픔과 탄식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열심히 전하는 교회와 종들의 사망으로 인한 슬픔과 탄식이 교회 안팎에, 우리의 가정과 삶에서 영영히 달아나리로다!
결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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