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제141차 [2009/2/3 (화) 저녁 ]   하나님의 인 맞을 종. (계7:1-4)

▣ 하나님의 인 맞을 종. (계7:1-4)

    하나님의 인 맞을 종은 누가 뭐라해도 십사만 사천이 나온다.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전환할때 율법시대 종들이 얼마나 핍박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 이천년사가 뿌리를 내리며 이루어져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독교 백년사를 이루어왔다.

    그런데 앞으로 하나님의 인맞은 종이 십사만 사천이 더 나온다는 것이다. 인맞은 종의 반열에 서자.



1)순교자의 기도 응답이 내리는 종.

    하나님의 인 맞을 종에게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밤낮 쉬지않고 부르짖는 순교자의 기도가 밤낮 내려온다.

    기도를 많이 하면 주변에서 기도부탁을 받는다.
    어떤 기도능력을 받은 종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한번만 해줘도 대단한 역사인데 그냥 사람이 아닌 주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은 순교자가 하나님의 인 맞을 종을 위해서 기도를 폭발적으로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열정도 회복되고 하나님의 인 맞을 종으로 변화되는 것이다.(계6:9-11)

    우리의 머리에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같이 보좌앞에 호소하는 천천만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쏟아져 내려온다.
    순교자의 마음, 생각, 정신, 사상, 신앙이, 불타는 열정이 들어온다.
    교회가 열정이 식어져 버렸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가고있다. 교회를 위해서 울고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없다. 오늘날 교회가 잘먹고 잘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이때에 뜻있는 사람은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한다. 형식적으로 예수믿는 껍질을 탈피해야 한다.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내려와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순교자의 값진 핏값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자유롭게 예수믿을수 있는것도 그 순교자의 고귀한 핏값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보좌앞에서 하나님께 순교자의 우리의 핏값을 갚아달라고 밤낮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맞은 종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 하셨다. 그래서 순교자는 하나님의인맞은 종이 나오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 기도의 응답이 내려온다. 마음, 몸, 설교, 아멘이 뜨거워진다.
    예수를 믿어도 사데교회와 같이 죽은것 같이 믿는 교회가 태반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을 살려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순교자에게 기도를 시키신다. 인맞은 종의수가 채워지도록 시키신다.
    그 기도의 응답이 내려지는 종은 그종의 신앙이 안살아날수가 없다. 그종이 안 뜨거워질수가 없다. 그종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안갈 수가 없다. 하늘로부터 순교자의 기도 응답이, 기도의 힘이, 기도의 능력과 역사가 뻗쳐오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능력으로 힘으로 역사로 우리에게 뻗쳐오는 것을 느껴야 한다.
    느낌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표적과 증거가 일어난다.

    순교자는 영혼이기 때문에 밥도 먹지 않고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 오직 밤낮 기도만 하는 것이다. 그런 순교자가 우리를 위해서 밤낮 쉬지 않고 기도를 쏟아붓는다.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내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내려져야 하겠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 사상, 신앙, 마음, 체질, 생활을 변화시킨다. 그 역사가 하나님의 인맞을 종의 반열로 이끌어주게 될 것이다.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꼭 내려져야 한다.
    지금은 계12:7-9에 하늘에 영적 전쟁이 일어난 영계가 혼란한시대이다. 그래서 기도를 잘못하면 마귀의 목소리를 듣게된다. 이제는 영적으로 밝아지지 않으면 영적으로 새까맣게 흐려지는 영적으로 극과 극을 달리게 되는 시대이다.

    이럴때 우리의 영계를 잘 보존해야 한다. 이제는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순수하게 들어와서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의 인맞을 종의 신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힘과 능력이 순교자의 기도응답에 있다.

    오래전에 라봇이라는 사람이 아합과 이세벨의 간교에 빠져 죽게되었다. 그때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나와 라봇의 핏값을 아합과 이세벨에게 갚았다.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순교할때 그 자리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 순교자의 핏갚이 사울에게 내리면서 사도 바울이 되어 복음을 유럽에까지 전하며 순교자 스데반의 핏값을 바울이 갚게 된 것이다.

    순교자의 기도가 하나님의 인맞은 종에게 내려지면서 계11:3-6같이 역사하여 순교자의 핏값을 갚게한다. 그러한 역사를 위해서 순교자는 기도하고 인맞은 종의 수는 채워져서 이시대 순교자의 핏값을 갚는 환난시대 새 역사가 이 시대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종들에게 순교자의 기도응답이 전적으로 내려진다.



2)가증한 일로 탄식하며 우는 종. (겔9:3-6)

    에스겔 선지가 이상가운데 보니 허리에다가 먹 그릇을 찬 서기관이 나타났다. 하나님이 그 서기관에게 가증한 일로 울며 탄식하는 종 이마에다가 표를 하라 하셨다. 그 뒤에 그 뒤를 좇아온 사람에게 표없는 사람, 가증한 일로 인하여 울며 탄식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라 하셨다.

    겔9:1-2에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 먹 그릇을 찬 서기관이 표를 하며 가면 그 뒤에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사람이 따라다니면서 표 없는 자를 늙은자들부터 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맞을 종은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종이다.
    오늘날엔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종들을 위해 울어야 한다고 하는 종들이 없다. 성경은 울라고 하고 있다.
    종말의 역사가 있을때도 가증한 일로 인하여 우는 종의 이마에 표하라 하셨고 울지 않는 종은 살륙하는 기계로 친다 한 것이다.

    교회란 먹고 살기위한 터전이 되서도 안된다. 교회는 순수하게 하나님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는 다른 목적을 가미되면 이미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영화롭게 해드리는 일에만 쓰여져야 교회인 것이다.

    교회가 교회가 아닌 이런 가증한 현실을 놓고 울며 탄식하는 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삯군 목자가 나오고, 기도하지 않고 목회하는 종드 자리를 잡아가는 교회라면 이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종은 기도에, 설교에 충실해야 한다. 물질이나 유형적인 역사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런것을 보며 울며 탄식하는종의 이마에 표한다는 것이다. 그런 종이 아닌 종은 하나님이 마지막에 사정없이 쳐버린다는 것이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이다.

    이 시대에 엘리야시대같이 음녀교회가 나온다. 이세벨 비진리 바알 선지를 섬기며 하나님의 참선지 엘리야가 도망다니다가 엘리야에게 여호와께서 응답하시어 불을 내리시고 바알선지 모두를 다 쳐죽이는 역사가 있었다.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도 참목자, 참성도의 길을 가야한다. 다른 사람보다 못살아도 상관 없이 내가 참목자의 길을 가야한다.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울어야 한다. 바로 그 사람의 이마에 인을쳐서 원수피해 마귀의 피해를 받지 않게하여 주신다는 것이다.(계9:4)

    계17:1-에 마지막에 교회가 음녀교회가 되는데 교회가 공산주의를 용납하고 세속화된다. 말만 교회지 교회가 아닌 예수님이 왕래하시지 않는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는 심판받게 되고 신령한 영적 교회는 예수님께서 밤낮 왕래하시는 것을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왕래하시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 역사있는 교회, 하나님의 인맞을 종이 나오는 교회이다.

    율법시대 가증한 것은 외식하는 자였다. 사람앞에는 바로하고 하나님앞에는 바로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했다. 종들의 삶에 본받지 말아야할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사람의 이마에 표하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다. 그러면 황충이가 나와 사람을 해해도 그 피해를 받지 않게 된다.



3)백마의 사상을 가진 종이다. (계6:2)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네가지 말이 나온다. 그것을 사대 병마라 한다.
    흰말 백마를 제외하고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을 하나님의 대적으로 보는데 이를 적마의 삼세력이라 한다.

    붉은 말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말이다. 검은말은 자본주의 운동을 하는 말이다. 청황색말은 청색과 황색으로 이중색을 가지고 나오는 이 말은 궤휼주의 운동을 하고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가지 사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 적마의삼세력과는 별도로 흰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 흰 말 타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백마의 사상을 가지고 백마를 타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백마를 탄다는 뜻은 백마는 기독교 2차복음 운동을 하러 나온 말이다.
    다시말해 철저한 복음주의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백마의 사상을 가진 종은 철저한 복음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붉은 말은 무력으로, 검은 말은 물질로, 청황색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점령하려는 세력이다. 그러나 백마는 복음주의 역사로 세계에 역사하려는 말인 것이다.

    백마의 사상이란 복음의 절대성을 가짐이다. 순교자가 복음에 절대성이 있기에 주를위하여 죽을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복음의 종들은 순교자와 같이 사상을 가져도 죽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쓰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에서 혼잡이 떠나가야 한다. 자기생각이 많은 사람, 자기 머리를 의지하는 사람은 머리에 혼잡이 있는데 그 혼잡이 떠나가야 한다. 순수한 하나님의 역사로 하려하는 생각이 온전해지는 것이 백마의 사상이다.
    하나님의 말씀, 신으로, 방법으로, 기적으로, 모략으로 된다고 믿고 가는 것이 복음주의 사상이다.

    중요한 것은 권모 술수속에 교인의 수를 늘리고 유명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도, 두달란트 받은자도 주님의 칭찬은 똑같았다. 우리의 생활속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백마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 늙어서 순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 나신 동네의 아이들은 두살아래로 헤롯의 손에 싹 죽어버렸다. 그 아이들이 보좌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백마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위해 기도해준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는 종이 아닌 정도로, 정로로, 진실하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백마의 복음주의 사상이 있는 종을 위해서 순교자가 기도한다.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누가 모함하고 비방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정도로 가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하는 소리가 아닌 나의 양심의 소리이다. 내가 하나님앞에 얼마나 바로하는지 남이 아닌 자신이 더 잘 아는 것이다.

    혼잡한 사상이 떠나가게 하시고 우리의 머리가 시원해지고 맑아지게 하신다. 백마의 사상으로 갈 때가 이때이다. 그 순수한 종들을 위하여 순교자가 기도를 쏟아부어 주신다.



4)척량받고 나온 종. (계11:1)

    하나님의 인맞을 종을 다시예언하는 종으로 쓰시기 위하여 척량하신다.

    세가지를 척량하시는데 하나는 심령에 성전이 이루어졌는지 척량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들어있다. 마지막에는 성전을 세웠는지 바벨탑을 쌓았는지 하는 것이다. 바벨탑은 무너지고 황폐해진다.

    그런데 심령속에 말씀이 바탕이 되고 진리가 기초로 놓이며 예수님이 오셔서 성전이 이루어진다.(고전3:16)

    심령의 성전이 이루어지면 제일먼저 사리사욕이 없어진다.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욕심이 없어진다.
    바벨탑 같은 큰 산이 무너져버리고 우리 심령속에 성전을 이루고 속에 역사하던 사리사욕을 몰아낸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큰 금물은 사리사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욕심속에 쓰여져서는 안된다. 우리의 심령속에 성전이 없어서 예수의 마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종들이 안좋은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심령의 성전을 이룬종들을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하신다.

    제단을 이룬다. 이 제단은 사19:19-20에 압박과 고난을 당하던 애굽땅 중앙 제단에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하셨다. 예수안에서 바로하려는 사람에겐 압박과 고난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그런 종들에게 기도하는 제단이 심령에 이루어진다. 기도가, 감사가 올라온다.

    그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 일어나는데 이 사람은 사11:3같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자이다. 밤낮 제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던 제사장 같이 말씀받고 기도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 종을 척량하시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완성하는 종이 하나님의 인맞을 종으로 나오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의 수에 들어가며 이시대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붙드셔서 별과같은 종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인 맞은 종의 시대가 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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