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을 종에게 나타나는 신의 역사" [사 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남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인성 예수를 뜻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남은 말씀으로 계시는 신성 예수를 뜻한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하고 한 것은 신성과 인성을 겸하신 한분 예수를 통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말하니 열매 맺는 종들에게 2절과 같이 여호와의 신이 내리고 3-5절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며, 마 21:43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신의 역사로 열매 맺는 종이 되어야 하겠다.
1. 눈과 귀가 새로워지는 신의 역사(3)
선지자 발람은 눈이 어두워져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고, 당나귀라도 눈이 열려지니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다.
눈이 어두워진 발람 선지자는 미친 선지자가 되었고, 당나귀는 눈이 열려져 자신의 주인을 죽음에서 건져내었다.
여호와가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시느냐, 어둡게 하시느냐에 미래가 달라진다.
사도요한은 계 3:17-18 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라고 하였다.
그는 눈이 환하게 열려져서 보좌세계를 보았으며, 환난에 대한 일, 재림에 대한 일, 심판과 천년왕국, 그리고 무궁천국에 대한 모든 일을 기록해 놓을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내다보고 요일 2:16 에 사도요한은 안목의 정욕을 뽑아져야 함을 지적하였고, 이사야는 사 33:15 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말라고 하였다.
눈이 열린종은 사 11:3 같이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않게 된다.
우리의 영의 눈이 밝아져 보좌세계와 새 하늘과 새 땅, 미래를 내다볼수 있는 밝은 영계가 되어야 하겠다.
또한 귀가 열려져 말씀과 진리를 학자 같이 알아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사 50:4-5 )
사 33:15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귀가 열린 종은 사 11:3 같이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않게 된다.
사도요한은 나팔소리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켜 심판주 예수를 본후 죽은자 같이 되었고, 최고의 영계 축복과 함께 기독교 제2차 오메가적 역사를 다 기록하는 사명을 다하였듯 우리도 말씀 앞에 자아를 꺾고, 엎드려지므로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눈과 귀가 열려져 사도요한과 같은 영계 축복을 받자.
2. 공의를 행하는 신의 역사(4)
습 2:1-3 에 환난날에 구원받기 위하여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하였고, 미 6:8 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암 5:15 살기 위해서 선을 구하고, 성문에서 공의를 구하라고 하였다.
공의란 거짓과 편벽과 치우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슥 4:10 에 있는 다림줄과 같은 역사이다.
다림줄이 어떠한 환경의 변화가 와도 수직을 보는데 있어서 공의로운것과 같이 말씀으로 기준 잡은 자는 편벽됨이 없이 치우치지 않게 공의를 행할수 있다.
우리는 공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신의 역사가 있으면 공의로워질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에 공의롭지 못하게 하는 인정과 사정을 사정없이 치라.
여호수아가 아간을 치듯, 다윗이 물맺돌로 골리앗을 넘어뜨리듯 내 자신 속에 있는 아간과 같은 인정과 사정과 욕심을 물리치고, 공의롭지 못했던 모든것을 바로 잡으라.
그리고 공의를 행하는 신의 역사를 받자.
공의를 행할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이요, 승리자로 자신도 살고, 많은 사람도 살릴수 있는 것이다.
3. 정직을 행하는 신의 역사(4)
여기서 말하는 정직이란 도덕이나 윤리적 차원에서의 정직이 아니다.
아브라함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분의 명령대로 하는 것이 정직이다.
그는 떠나라면 떠나고, 바치라면 바치며, 내 보내라면 내 보내는 가감하지 않은 정직한 신앙이었다.
사 26:7 에 정직하신 주님처럼 말씀대로 하는 정직한 자라야 의인이 될수 있으며, 하나님은 이처럼 정직한 종을 원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정직하셨으며, 이삭은 자신을 결박하여 칼로 내리 꽂을때까지 정직으로 순종하였다.
우리도 정직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회계하고 위선과 거짓을 벗고 예수님처럼, 아브라함과 이삭 같이 복음앞에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앞에 정직한 신앙으로 신의 역사를 받아 새롭게 변화되자.
4. 겸손을 행하는 신의 역사(4)
비진리는 교만하며, 진리는 겸손하다.
여기서의 겸손은 도덕이나 윤리적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분의 역사 앞에 복종하고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말하며,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믿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 57:15 에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신다고 하였으며, 약 4:6 에는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고, 습 2:2-3 에 겸손한 자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의 자리를 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신의 모습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겸손을 보이셨다.
우리도 이처럼 복음과 주를 위해서라면 가장 낮은 자리까지 갈수 있는 겸손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말세에 사 41:14-15 의 지렁이 같이 미약해진 자를 새 타작 기계로 쓰신다.
그러므로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미래에 되어질 예언 말씀을 의심없이 받고 그대로 순종하는 겸손한자가 되어야 하겠다.
5. 성실을 행하는 신의 역사(5)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겼을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각각 남겼던 그들은 성실한 종이었다.
하나님이 주신대로 갑절로 남기는 것이 그들이 남겨야할 선이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대로 최선을 다하여,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종이 성실한 종이다.
하나도 남기지 않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을 받으며, 주신것 보다 더 남긴것 또한 과욕이 된다.
하나님이 허락한 만큼 최선을 다해 그분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성실이다.
그 이상 하려고 하는것은 정도를 벗어난 영적인 허영이요, 과욕이 된다.
우리는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종이 되자.
주의종으로 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분량대로 성실히 하게 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인정받자.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관리인으로, 감옥에서는 죄수로, 총리로서 최선을 다하였던 성실한 종이었다.
우리는 성실한 종으로 변화받아 사람의 눈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눈 앞에서 성실한 종이 되자.
6. 진실을 행하는 신의 역사
진실이란 세가지가 있으니 도덕적인 진실과 계 19:11 의 예수님의 진실과 계 17:14 의 사명자의 진실이다.
이는 말씀과 진리가 몸에 이루어진 진실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진실이요, 우리는 말씀을 받기 전 몸이 먼저 이루어졌으니 말씀을 받아드려 그 말씀과 진리를 몸에 이루는 것이 진실이다.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 비진리를 몰아내고, 인간성과 죄악성이 죽어지고, 예수님의 마음과 신의 성품, 변화체질, 생활의 변화가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것이 열매요, 진실이다.
진실한 종이 되는 신의 역사를 받아 예수님의 진실을 닮아 다시는 거짓과 위선이 존재하지 않는 진실한 종이 되자.
7.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신의 역사(3)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경지에 이르면 환경과 생활에 어떠한 고난과 난제가 와도 그 즐거움이 깨지지 않는다.
열매 맺을 종에게 눈과 귀가 새로워지며, 공의와 정직을 행하고, 겸손과 성실을 행하는 진실한 종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신의 역사를 받자.